• 분노는 주체로 하여금 (분노를 일으키게 만든) 대상으로 다가가게 만드는 감정이다. 비난을 하든, 보복을 하든, 처벌을 하든, 어쨌든 주체는 대상과 마주쳐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혐오는 다르다. 주체를 대상과 가능한 한 멀리 떨어뜨리려 한다. 동물적인 것, 열등한 것이 나를 오염시킬까 꺼림칙하고 두렵기 때문이다. '주체와 대상의 분리', 이것이야말로 혐오라는 감정의 특성이다. 너스바움이 "혐오는 자신의 몸 안과 밖이라는 경계와 관련이 있다"고 말한 것은 정확히 이런 측면을 가리킨 것이다.

 

  • 헬조선론은 겉보기에 사회모순에 대한 반발로 보인다. 그런데 왜 분노가 아니라 혐오로 나타나는 걸까? 정동affection을 분석하는 많은 연구자들은 인간의 감정이 순전히 본능적인 감각이나 반응이 아님을 지적한다. 대상에 대한 인식이 대상을 향한 감정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미개한"이라는 말, 혹은 '문명'과 '미개'라는 이분법은 전형적인 식민주의 사고방식이다. 그 인식이 '하필' 헬조선 담론과 가장 밀접해 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 오염을 거부하는, 순수함과 완전함에 대한 환상은 타인뿐 아니라 자기에 대한 혐오를 일으킨다. 식민주의적 인식은 식민주의적 감정을 낳고 그 감정은 다시 주체와 대상 간의 거리를 더욱 벌려놓는다. 대상에 개입할 수 없으니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대상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도 없다. 남는 것은 자기모멸뿐이다. 너스바움은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예로 들어 분노는 저항과 참여를 불러일으키지만 혐오는 도피와 방기로 이어진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