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 써놓으면 하나의 나쁜 이미지로 고정되고, 자기 인생이 온통 불행한 것처럼 보일 텐데 사실과 다르며 그걸 원치 않는다고 했다. 나에게도 조심스러운 문제였다. 하지만 그런 복잡한 상황과 미묘한 심정을 잘 표현하는 게 글쓰기의 관건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 사람들은 생각만큼 남의 문제에 신경 쓰지 않는다. (...) 자신의 현안에 가려 남의 일은 뒷전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존재 개방의 수위를 고민하다 보면 자기 몰입이 어렵다. 좋은 글이 나오려면, 타인에게 비친 나라는 '자아의 환영'에 휘둘리지 말고 자기감정에 집중해야 한다. 자기 검열, 사회적 검열에 걸려 넘어지면 글을 쓰기 어렵다.

- 삶의 옹호로서의 글쓰기

 

  • 김현은 남은 일생 내내 써먹지 못하는 문학은 해서 무엇하느냐는 어머니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확실히 문학은 이제 권력에의 지름길이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써먹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문학은 그 써먹지 못한다는 것을 써먹고 있다. 문학을 함으로써 우리는 서유럽의 한 위대한 지성이 탄식했듯 배고픈 사람 하나 구하지 못하며, 물론 출세하지도, 큰돈을 벌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대체로 그것이 유용하다는 것 때문에 인간을 억압한다. (...) 그러나 문학은 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 감응하는 신체 만들기

 

  • 그러니 글쓰기 전에 스스로를 설득해야 한다. '이 글을 통해 나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글을 쓰기 전에 스스로에게 중얼중얼 설명하면서 자기부터 설득하는 오붓한 시간을 갖자. 두툼한 책이든 한 페이지 글이든 한 줄로 정리하고 시작하는 것이 글에 대한 예의다.

 

  • 좋은 글에는 '근원적인 물음'이 담겨 있다. (...) 어떤 느낌, 어떤 감정에 사로잡혔을 때 그것을 당연시하는 게 아니라 왜 그런 기분을 느꼈는지 더 깊고 진지하게 파고드는 작업, 그게 문제의식이다. 우선은 나를 향해 '왜'라고 질문하는 것 말이다.

- 사유 연마하기

 

  • 글쓰기를 한다는 일은 마음껏 슬퍼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슬퍼한다는 것은 온전한 내가 되는 일 같다. 나의 슬픔과 기쁨을 후련하게 말하기. 기쁨을 내밀듯이 슬픔을 꺼내놓는, 존재의 편안한 열림을 글쓰기가 돕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열어젖혀진 존재 위로 또 다른 말들과 생각들이 날아들 것이다.

 

  • 글쓰기 모임이 많아지면 좋겠다. 누군가 글을 쓰고 싶은데 어떻게 할까요, 라고 묻는다면 나는 읽고 쓰는 모임을 만들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미 만들어진 모임을 찾아가는 것도 방법이다. 여럿이 모여서 각자 생각을 말하고 책을 읽고 글로 써보는 시간을 누리길 권한다.

     - 슬픔이 슬픔을 구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