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을 되살리는 데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우리는 어떤 기억을 떠올릴 때 가장 분명한 것을 찾으려다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곤 한다. 새의 날갯짓은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제공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비행의 원리는 아니다. 원리는 날개 모양과 위아래로 가해지는 공기의 압력차에 있다. 하늘을 날고 싶었던 인류는 초기 노력에서 가장 분명한 것에 치중하다가 가장 중요한 것을 간과한 결과, 날갯짓하는 기계를 개발했다. 기억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는 기억이 과거의 사건과 일화를 불러오는 의식적인 경험이라고 여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일화 기억이라고 부른다.


일화 기억은 날갯짓에 불과하며 항상 우리를 배반한다. 우리의 일화 기억은 수십 년에 걸친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밝혀졌듯이 가장 좋았던 시간에는 특히나 신뢰성이 떨어지며, 우리 뇌 기능이 약화되면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기억이다. 이것은 마치 멀리 갈수록 사라지는 새의 날갯짓과 같다.


그러나 누구도 이름을 불러 준 적 없는 훨씬 심오하고 중요한 기억의 방식이 있다. 각자의 개성에, 그리고 그 개성이 발현된 삶 속에 깊이 새겨진 과거의 기억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러한 기억을 모른다. 보통 의식할 수 있는 종류의 기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기억들은 우리 자신을 형성한다. 우리가 내리는 결정, 취하는 행동, 그 결과 살아가는 삶 속에 드러난다.


우리 곁을 머물렀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의식적으로 기억하지 않아도 우리의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우리의 의식은 변덕스럽고 기억이라는 임무를 행할 만한 자격이 없다. 누군가를 기억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그들이 형성하도록 도와준 나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가끔 기억할 가치가 없는 이도 있다. 그럴 경우 가장 중요한 실존적 과제는 우리의 삶에서 그들의 기억을 삭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억할 가치가 있는 이들이라면, 그들이 만들어 준 사람의 모습으로 사는 것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그들을 존경하는 방법이다.


나는 언제나 나의 늑대 형제를 기억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