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힘의 관계를 시혜의 관계로 표상하도록 하는 언설들이 난무하는 순간, 우리는 베푸는 지배자, 약자들이 가여워 눈물 흘리는 인정 많은 권력자를 받드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자비로운 지배자의 표상 반대편에는 무력하고 보호받아야 할, 그리고 그것에 감사할 수 있을 뿐인 우리의 표상이 존재한다.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그와 같은 표상을 가진 이상, 심판자의 위치는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 우리는 선량함 밖으로 나아가 다른 활동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가능성을 사유해야 한다. 시인이 거지에게 흠씬 두들겨맞으면서 수행하는 시적 교육학은 항상 자신과 사회가 늘 특정한 방식으로('약자'로) 규정하는 어떤 존재에 대한 또다른 표상방식의 가능성을 질문하고 자기 자신에게 허락된 존재방식에 의문을 던지기 위한 것이다. 이 두 가지 가능성의 차원에서 교육되는 대상은 시인 자신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적 교육학은 질문을 통한 일종의 자기교육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교육의 첫걸음은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그 어떤 존재든 아무리 약해 보여도 그를 그저 무력한 피해자의 형상으로 바라보기를 멈추는 것이다. 그때에만 우리는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무엇인가 시작되는 기미를 포착할 수 있다. 피해자의 형상에 고착될 때 우리는 질문하고 사유하는 대신 선량함의 두꺼운 안대를 두르고서 손쉬는 대답을 반복하게 된다. 우리가 '무력하기만 한 피해자'라는 형상을 통해 바라보는 피해자들은 실제로 현실에서는 진실에 접근하고 사태를 변화시키기 위해 숱한 어려움 속에서 싸움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