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이 내가 이런 글을 쓴 취지는, 몇몇 방면, 예를 들면 문학 예술 등에 그 손실을 보전할 길이 남아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서였다. 나는 우리가 이미 잃어 가고 있는 그늘의 세계를 오로지 문학의 영역에서라도 되불러 보고 싶다. 문학이라는 전당의 처마를 깊게 하고, 그 벽을 어둡게 하고, 지나치게 밝아 보이는 것은 어둠 속으로 밀어 넣고, 쓸데없는 실내장식을 떼 내고 싶다. 어느 집이나 모두 그런 것이 아닌, 집 한 채 정도만이라도 그런 집이 있었으면 좋을 것이다. 자, 어떤 상태가 되는지, 시험 삼아 전등을 꺼 보는 것이다. 

_ 1933. 12"


- 다니자키 준이치로, <그늘에 대하여>


우연히 접한 이 에세이집의 몇몇 문장이 마음을 사로 잡았기에 읽어내려가고 있다. 우선 이 에세이집의 첫 글이자 제목이기도 한 '그늘의 대하여'에서는 다양한 장소들을 포함하여 몇 가지 일상 속의 대상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는데 저자의 관점이 퍽 흥미로운 구석이 많다. 집안의 배선, 변소, 화로, 조명, 복식, 식기, 가구, 창문 등 수 많은 것들을 느릿느릿 읽어내는 글이다. 나는 그 중 "풍류는 추운 것이다"(...구태여 결점을 말한다면, 본채에서 떨어져 있기 때문에 밤중에 다니기 불편하고, 겨울에는 특히 감기에 걸릴 염려가 있다는 것일지라도, "풍류는 추운 것이다"라고 한 사이토 료쿠의 말과 같이, 그런 장소는 바깥 공기처럼 싸늘한 편이 좋다.(p.13))라는 부분도 유난히 좋았다.


이해할 수 있는 것들도 어느 정도 있지만, 일본의 전통적인 복식이나 화장법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쉽게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도 있었다. 역사적인 맥락을 모른다면 이 글을 온전히 소화하기란 쉬운 일은 아닌 듯 하다. 다행히 글의 전체적인 글의 요지가 응축되어있다고 생각했던 구절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문단마다의 길이가 굉장히 긴 것 같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는 것이, 이제 와서 불가능한 일을 바라고 푸념을 늘어놓는 데 지나지 않지만, 푸념은 푸념대로, 어쨌든 우리가 서양인에 비하여 어느 정도 손해를 입고 있는지 하는 점은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결국 한마디로 말한다면, 서양은 당연하고 순조로운 방향으로 와서 오늘에 도달한 것이고, 우리들은 우수한 문명에 맞닥뜨려서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대신에, 과거 수천 년 동안 발전하여 온 진로와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 나가게 되면서, 거기서부터 여러 가지 고장이나 불편이 생겨났다고 생각된다. 하긴 우리들이 방심하고 있었다면. 오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물질적으로는 큰 진전을 이루지 못하였을지도 모른다. 요즘에 중국이나 인도의 시골에 가 보면, 석가나 공자의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자신들의 생활에 맞는 방향만은 취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완만하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진보를 계속하여, 언젠가는 오늘날의 전차나 비행기나 라디오를 대신하는 것,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서 빌린 것이 아닌, 정말로 자신들에게 맞는 문명의 이기를 발견하는 날이 오지 않으리라고는 단정 지을 수 없다. 요컨대 영화를 보아도, 미국 작품과 프랑스나 독일의 작품과는 그늘이나 색조를 배합하는 수법이 다르다. 연기나 각색은 별도로 하고 영사 화면만 보더라도 어딘가 국민성의 차이가 나타난다. 동일한 기계나 약품이나 필름을 쓴다 해도 역시 차이가 드러나기에, 우리 고유의 사진술이 있다면, 얼마나 우리의 피부나 용모나 기후 풍토에 적합한 것이었을까 생각한다. 축음기나 라디오도 만약 우리가 발명했다면, 훨씬 우리의 소리나 음악의 특징을 살릴 수 있는 물건이 나왔으리라. 원래 우리의 음악은 조심스러우며 소극적인 것이고 기분을 중시하기 때문에, 음반으로 듣는다든지 확성기로 크게 한다든지 하면 거지반 매력을 잃게 된다. 말하는 것 또한 우리들은 소리가 작고 말수가 적어, 무엇보다도 '사이'가 중요한 것인데, 기계에 걸면 '사이'는 완전히 죽어 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기계에 영합할 수 있게, 도리어 우리의 예술 자체를 왜곡해 간다. 서양인이 원래 그들 사이에서 발달시킨 기계이기 때문에, 그들의 예술에 맞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들은 실로 여러 가지 손해를 입고 있다고 생각된다.(p.18-p.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