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자라면서 십수 년 간의 교육을 통해서 배우는 것은 틀 안쪽에 관한 것이다. 세계로부터 사각틀의 바깥쪽을 잘라내버리는 일이다. 가나다라...... 글을 배운다는 것은 허공을 통과하는 연속적인 말소리의 분할과 편집을 통해, 달아나는 시간을 공간적으로 번역해 붙들어놓는 법을 배우는 일이고, 나아가 그 번역의 편차를 묵인하거나 무시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글을 못 배운 사람을 까막눈이라 하지만 글을 배우면서 우리는 이러한 사각형의 틀 밖에 대해서 까막눈에 가까워진다. 그 틀 안에 들지 않는, 작업대 위에 올려놓으면 자꾸만 미끄러져 시야를 벗어나는, 뭐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또 다른 세계, 사물들과 이미지의 세계는 윌에게 블랙홀이 된다. 매일매일 엄청난 양의 이미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현대의 삶 속에서 우리가 수동적이고 현혹당하기 쉬운 소비자가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이미지들은 사각형의 접시에 담겨져 우리에게 제공된다. 이처럼 편안하게 소비할 수 있는 사각의 창틀을 벗어난 세계, 시각적인 이미지들 앞에서 사람들은 불안해한다. 사각형의 액자 밖으로 빠져나간 그림, 사각형의 좌대를 벗어난 조각, 문자언어로의 번역을 거부하는 미술작품 앞에서 사람들은 자조 섞인 비난을 던진다.


미술만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예술을 한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틀 밖의 세계를 관찰하고 사람들의 시야를 그리로 넓혀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글은 미술을 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이러한 사각형 바깥 사물들의 세계로 우리의 시선을 옮겨보고자 하는 시도다. 그것은 우리들의 몸과 그 주변의 일상적인 사물들에 관한 일종의 답사기다. 가장 가까운 데 있는 우리의 신체조차도 건강과 미용, 섹스와 외모의 차원을 넘어서면 시야 밖의 낯선 세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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