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죽어도 '내가 되어야만 하는' 족속, 림보


가장 배제된 자들도 림보족만큼 배제되지는 않았다.

여성, 노동자, 장애우, 탈출자, 외국인, 독거노인, 범죄자, 고아,

최저임금자, 범죄자 등은 적어도 사회적 약자들로 '분류' 되기라도 한다.

림보족은 사회적 계층을 형성하지도, 어떤 현상을 대변하지도 못한다.

그들이 겪는 문제는 인류 보편의 관심사에 해당되긴커녕 사소하고 개인적인

예외로 치부되어 그 어떤 매체에서도 취급되지 않는다.

림보족이 행여나 고충을 털어놓을라 치면, '너보다 힘든 사람 많다'는

핀잔만 들을 뿐이다. 병은 앓고 있지만 아픔을 납득시킬 수 없는 존재,

그들이 림보족이다.


대체 이들이 원하는 것은 뭔가?

어째서 한사코 소속과 정체성 분류를 거부하는가?

그런다고 먹을 게 나오나? 누가 알아주기를 하나? 대체 왜?

그들은 추구하는 것이 있는가? 행복? 아니다.

가족이나 자녀, 자신의 미래?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건강? 평등? 성장? 민주주의? 안락한 삶? 관심 밖이다.

세상에 무언가 남기고자 하는 거라도 있나? 없다.


그렇다면, 림보족이 선포했다는 전쟁은 무슨 전쟁인가?

그것은 속하지 않고 '그냥 있을' 자유를 위한 전쟁이자

자신이 느끼는 대로 느끼려는, 좋아하는 걸 좋아하고,

싫어하는 걸 싫어할 수 있는 감수성 독립 전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독립을 가로막는 세력인 바퀴족과의 일생일대 결전이다.

즉, 내가 무엇이 아닌지 알기 위한 투쟁이다.


그렇다면, 림보족이 수행한다는 거울 수색이란 무엇인가?

림보족이 '자신이 되는' 길을 비춰줄 지도 찾기이자

어디에서, 어떻게, 무얼 하며 살아야 할지 알려줄 단서 찾기이다.

34살이 되기 전에 목숨을 걸고 수행해야 할 임무이다.

즉, 내가 무엇일 수 있는지 알기 위한 수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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